[갑님 이야기(3)] 인간이 제일 잔인하더라. 그런데도 인간이 따뜻하더라. 길에서 만난 인연들

** 오랫만에 올리는 오늘 이야기는 마냥 유쾌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이니, 지금 현재 아주 행복하신 분들은 이 글을 패스하시길 권합니다.



1. 300그램의 작은 몸에 인간의 모든 잔인함을 담다.
#

갑이가 제 품에 잠시 오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갑이를 제게 보내신 분의 말씀에 따르면,
가정집에서 교배후 태어난 갑과 갑의 형제들은 젖먹이 상태에서 병원에 위탁분양 형태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갑이보다는 잘생기고(뭐... 갑이 보다 잘생겨봐야.. 풋 ㅡㅡ) 건강한 녀석들은 모두 분양되었고
마지막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갑을, 갑의 보호자는 "포기"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보호자에게 "포기당한" 갑은, 병원에서조차 보호소로 보내버리겠다는 선언을 받았습니다.

젖도 못먹어본 꼬물이를 두달 넘게 팔기 위해 데리고 있던 소위 "병원"이라는 곳에서 보호소로 보내버리겠다는 결정을 내린거죠.
고작 삼백그램의, 그것도 온몸이 곰팡이에 뒤덮힌 이 녀석을... 보호소로... 보호소에서 죽으라고 보내버리겠다는.. 그런 결정을 내린 겁니다.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자주 들어도 적응되지 않을, 구역질이 날만큼 잔인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갑이는 보호소로 보내지기 직전 로마맘님 눈에 띄었고..
그렇게 제 품에 도착했습니다.

돈 몇푼 벌자고 키우던 아이를 출산시키고, 젖도 먹이지 않은 채 위탁분양(말이 위탁분양이지 거의 방치..라고 봐야죠.)을 맡기고,
팔리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돈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사지로 보낸다는 이 인간의 잔인함.
이 잔인함을 고스란히 안기에 삼백그램의 갑은.. 너무나도 어리고, 약하고, 작습니다.


*

역하지만,
솔직히 전 이런 식의 구조와 보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위 "똥 싼 놈 따로, 구하는 놈 따로"라는 식의 구조는 펫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한다는 느낌이 들어 매우 역합니다.

하지만 늘 일이 생각한대로만 굴러가는 건 아니잖아요.

늘 그렇지만 전 사진에 지배당하는 인간입니다.

이 사진 한장이었어요.


나가야겠다는...
여기서 내보내 달라는...저 얼굴에 홀렸나봅니다.


#

사실 갑이는
얼굴 생김부터가 인간의 잔인함을 담고 있는 얼굴입니다.(모... 못생겨서??ㅎㅎ)


전형적인 플렛노우즈, 단두형의 얼굴을 가진 갑은
자연의 진화형태에서 나오지 않는 얼굴입니다.

인간의 눈에 이뻐서, 그저 인간의 취향에 맞춰 개량시킨 이러한 생김은
아이들이 밥을 먹기도, 물을 마시기도, 숨을 쉬기도 힘든 얼굴입니다.

자연상태에서 생존가능성이 아주 낮은 얼굴인거죠.

소위 순혈의 브리딩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이쁘다는 생각보다는 인간의 잔인함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 맘이 아픕니다.

솔까... 갑이 얼굴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거죠.



*
갑이에 대한 인간의 잔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갑이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기 전 그 병원에서 간단한 진료를 받고 데려나왔습니다.
이미 해당병원에 대한 일말의 신뢰도 가질 수 없던 전..
로마맘님께는 죄송하지만 병원비를 내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임보를 맡게 되면 그에 해당하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곳에서는 정말 십원 한장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갑이와 함께 제 손에 남겨진 건,
내복약과 알수 없는 연고, 알수 없는 약용샴푸 그리고 베이비캣 사료.
곰팡이 치료를 위해 미용해줄 것을 권하는 의사의 소견이었습니다.

애초 병원에 대한 신뢰가 없기도했거니와, 300그램 아가에게 미용을 권하는 순간.. 
이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다음날 지인의 소개로 다른 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진료실밖에서 아이 체중을 재고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의사는 아이를 이동장밖으로 꺼내지 않더군요.
명목은 아기가 어렸을 때 아이에게 병원에 대한 좋은 기억을 줘야한다는...거였지만..

정신없이 진료를 보고 역시나 내키지 않는다고 수차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복약, 약용샴푸, 약들....
그리고 병원을 나오면서 깨달았죠.
이 병원에서는 아이의 체온을 재지도, 촉진을 하지도, 귀를 봐주지도 않았다는걸..

갑이가 스스로 이동장밖을 나왔을 때 갑이를 잠시 만진 의사는
저와 대화중임에도 불구하고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고 있더군요.

아니길 바라지만, 정말 곰팡이로 엉망인 이 아이가 더러워서 그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처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처방했고 제가 병원에서 결제한 금액만 십만원 가까이 되었으니까요.

아깽이를 오랜만에 만나서였는지,
아니면 마지막 만난 아깽이었던 손님이가 작은 체구로도 건강해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미덥지 않아도 두 병원에서 같은 처방을 했기에 은연중에 신뢰를 했었는지..

겁없이 전 약욕을 시도했고..
그 약욕은 가뜩이나 허약한 갑이에게 무리였습니다.

밤새 먹지도 못하고 설사만 반복한 갑이를 데리고 퐁이가 다니던 병원을 찾은 저에게
선생님의 진단은 단 다섯자였습니다.
"얘 이상해요"

모유도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
동일 월령의 아가 체중의 반도 되지 않는 아이,
뼈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아이..

급하게 피하수액과 영양주사를 맞추고
멍~해 있는 제게 선생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얜 곰팡이 때문에 안죽어요. 하지만 곰팡이 약 때문에 죽을 수 있습니다.
곰팡이 치료는 생각도 하지마세요."

네... 이런 아이에게 앞선 두 병원은 독하디 독한 내복약과 약욕을 처방했고
심지어 미용까지 하라고 말했던 거네요

약값 몇푼이 그리 벌고 싶었습니까.
아이를 만져보지 않아도, 그저 전자저울에 떠오른 숫자 세개만으로도 갑이에게 그 모든 처방은 갑이를 죽음으로 몰 수 있는 처방이었는데요..

그렇게 갑이는 병원의, 수의사들의 무책임한 잔인함까지 마지막으로 안아야했던 아이입니다.




2. 그래도 저 작은 몸은 사람이 따듯하다 하더라

#

애초 그 좁은 병원 케이지에서 나오고 싶다고 매달렸던 것부터
갑이는 인간의 따듯함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손에 안겨 저희집으로 오기까지
갑이는 단 한순간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고
늘 인간이 내미는 손길에 골골 소리를 우렁차게 내어주는 그런 아이입니다.


혼자서는 잘 먹지 못하는 얼굴탓에
인간이 내미는 딱딱한 플라스틱 수저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을 하는 그런 아이입니다.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상황에서조차, 사람의 무릎 위에 오르고 싶은 아이..


그리고 그 무릎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고양이인양 잠을 청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갑입니다.

가슴시린 걱정이 무색하도록
갑이는 최선을 다해 먹어줬고,
열심히 자라줬고, 열심히 절 사랑해줬습니다.

그리고 지금 갑은

꼬질꼬질 못남을 벗으며..
따뜻한 사람과 함께 할 준비를 이미 마쳤습니다.




자라지 못해 납작하던 뒷통수도 볼록하게 뼈가 자라고
척추가 드러나던 몸에 통통하게 살도 오르고
캣기둥에 매달려 타오르기를 할만큼 근육도 생겼네요.

그리고..
잔인한 인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듯









사람과 놀며, 부대끼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갑이의 삶에
이제 어떠한 잔인함도 끼어들지 않기를,
그리고 갑이가 이전에 자기에게 주어졌던 인간들의 잔인함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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